나의 이야기

해바라기에게 - 심상 3월호

청송 대추 2024. 3. 6. 03:35

해바라기에게   -  김 태 춘

 

머리 들면 이미 하늘인데

더 높이 오르겠다고 바동거리지 말게

 

뒤처질까 안달하지도 말게

속 채워가며 천천히 가도 늦지 않으니

 

곧게 살아보겠다고 나를 너무 몰아치지 말게

둘러보게

다들 조금씩 휘어지고 꺾어지며

해 따라 바람 따라 흔들리지 않는가

 

살다가 힘들거든

손을 내밀게

휑한 허공에도 잡아주는 손은 있으니

그러다 좋은 날 돌아오면

잊지 않고 갚아주면 될 일

 

너무 열심히 살지 말게

 

빈틈없이 살지 말게

악착같이 살지 말게

독하게 살지 말게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감당 못 할 치욕 서넛쯤 안고 끙끙대며 살아가는 거지

 

구멍이 숭숭 나야 바람도 들어오고

인심도 들어오느니

 

예뻐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게

세상의 꽃은 다 예쁘다

지금이 가장 예쁘다

 

곧 가을이다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  김 태 춘

 

행복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막상 그 의미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생 행복을 위해 달려온 것 같은데 정작 행복한 날은 없었던 것 같고, 그 행복의 실체조차 모른 체 아직도 행복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생의 목표라고 했는데 이때의 행복은 탁월함(Arete)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자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상서(尙書) 홍범(洪範) 편의 오복(, , 康寧, 攸好德考終命)이 서양의 행복과 근사한데, 이렇듯 행복은 다양하고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 같습니다.

한때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행복이 돈이나, 건강, 평화, 무사 무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서로의 행복을 열심히 빌어주니 다행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근심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표정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내색하지 않을 뿐 걱정 한두 가지 없는 집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때, 서랍에 내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 등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작가의 견해에 대해 당신이니까 그런 것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이미 명성과 명예를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합니다. 그래서 소확행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나 가외로 누리는 것이지 불행한 사람이 선택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이호근)”라는 말이 더 수긍이 갑니다. 즉 소확행도 이미 행복한 사람이나 누리는 호사라는 것이지요.

 

행복은 과거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이라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인간의 현재는 언제나 불행하다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실체가 없는 행복을 위해 인생을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활은 치열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한 경쟁과 생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불행한 것 같아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SNS 등 매체의 발달로 이제 전 세계를 실시간 손바닥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상상만 하던 것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돌아보게 되고 비교하게 됩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간격은 패배감 상실감 소외감을 가져오고, 절대적인 빈곤 못지않게 상대적 빈곤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도 놓지 못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무한대의 욕망 앞에서 행복은 꿈에 불과하고 고통은 현실이라서, 스피노자는 행복은 참 드물고 도달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욕망은 끝이 없으니 욕망이라는 분모를 줄여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말이 유행하지만, 인간이 곧 욕망의 덩어리인 것을 어떻게 쉬 버려지겠습니까. 한편 그 욕망이 있었기에 인간 종의 번성과 문명이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밤과 낮의 총량이 같듯이, 행복과 불행도 총량이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불행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행복이 90이고 불행이 10이라도 우리는 불행을 90으로 기억합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불행을 기억하는 것이 행복을 기억하는 것보다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중에서도 어떻게 하면 짧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다 갈 수 있을까요. 불행은 가만히 있어도 제 발로 찾아오지만 행복은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지 않는답니다, 행복은 주어진 것을 소비하는 것이고, 불행은 없는 것을 소모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쾌락(섹스. 탐식. 골프. 술 마약 등)이나, 능력을 벗어난 욕망(재물, 명예, 권력)이 아닌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가능한 목록을 구체화해 막연한 환상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행복의 주요한 변수가 됩니다. 건강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건강한 노후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무작정 오래 사는 것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소월 이상 기형도 김유정 등 요절한 문인이 존경받는 것은 충분히 타락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오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인간적 결함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신이 인간을 질투하는 것은 죽음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지 못하는 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부러워한다는 말, 오래 사는 것. 죽지 않는 것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년의 욕망은 추합니다. 서리가 내리면 금방 겨울이 올 것을 알면서도 내 생이 가을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모든 생명은 불행하게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생존하려면 끊임없는 도전과 경쟁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이 정상입니다. 나만 불행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행복해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존과 무관한 쓸데없는 짓이 문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단 돈과는 무관한 일을 해야 삶이 맑아질 것 같습니다.

별을 따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별을 보면 가슴이 뛰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이야말로 별을 따는 사람이 아니라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