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골만의 일몰 - 김 태 춘
물이 너무 맑으면 허기가 진다
입술을 훔치려다 눈이 베었다 치명적인 노을
비옥은 차라리 불치의 재앙
신과 가까운 곳은 낙원이 아니다
해변에는 밀려온 쓰레기와 미동 없이 누운 노인이 있다
아침에 띄워 보낸 주검 가라앉기 전 마지막 불꽃이 튄다
가진 것이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 끊어진 닻줄 따라 흘러간다
뱃전에 물이 차오르고 빈 솥이 둥둥 뜬다
일기예보는 연일 불순을 찍고 불어 터진 나무배는 바다보다 무겁다
물이 퐁퐁 올라오는 바닥에 떡밥처럼 뭉쳐져 뒹구는 여자들
죄짓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죄받는 바다
돛은 마음보다 먼저 찢어지고 바다보다 먼저 펄럭인다
돛이 일어서 닻을 찾을 때까지 행선지는 금기어
메카를 향해 엎드린 등 시퍼렇다
아이가 뱃전에 날아든 새우로 낚시를 한다
돛에 그려진 물고기가 물고기를 몰아오는 벵골만
일몰처럼 맑은 아이가 잡은 물고기를 놓아준다 행복은 물고기보다 쉽게 낚인다
떠도는 닻에는 갈퀴가 없어 작은 물살에도 흘러내린다 신두르 찍은 여인이 물살의 손을 잡는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조용한 위로
비린내를 좋아한다는 말의 뒤에 식은 아궁이가 있다
어둠 속에 아픔을 쟁여 넣는다
독이 되지 않도록 천천히 삭혀야 한다
벵골만이 닻의 고리를 잡아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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