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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심리전이다

청송 대추 2011. 9. 29. 15:05

 

                                   협상은 심리전이다


협상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원하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것의 절충점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달해야 협상이 완결된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심리전이다. 기(氣) 싸움이 되기도 한다. 협상의 판이 벌어지면 판세를 몰아야 하고, 기를 모아야 한다.


협상은 거창한 회사 사이의 합병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 생활 곳곳에서 자잘한 협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협상을 하느니 아예 뒤로 물러서는 것이 속 편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외교에서도 협상에 능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응 과정에서 속만 내보이고 실익은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팔만 걷어붙이다가 끝나기도 한다. 큰 소리로 제압해야 할 때와 부드러운 외교적 수사가 필요한 때는 다르다. 국제적인 분쟁에서 '조용한 외교'와 선전 포고 급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고, 각 단계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협상은 심리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큰 그림이 보인다. 오로지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자존심 대결이 되다 보면 비이성적인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협상에 이기고도 결국 이긴 것이 아닌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승리자의 저주'를 낳는다. 중간에라도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야 하는데, 비이성적인 집착을 하다 보면 그동안 들인 노력이나 비용이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고 끌려가게 된다.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틀'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연봉 인상 협상을 할 때, 기존 연봉을 기준으로 하면 어떤 퍼센트의 연봉 인상도 이득이 된다. 하지만 최초에 마음에 둔 자릿수의 연봉 인상을 기준으로 하면, 거기에 못 미치는 인상률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틀 짓기 효과'가 있기 때문에 협상의 틀을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진다.


유학 시절 경영대학원 교수가 비즈니스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 적이 있다. 비즈니스란 "고객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 오는데, 그것을 고객이 모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객의 돈을 훔친다는 뜻이 아니라, 고객이 돈을 내면서도 그것을 '손실'로 보지 않고 혜택 또는 이득이라고 여기도록 해야 성공적인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협상은 이성적인 과정이지만, 감성의 힘도 크게 작용한다. 상대방에 비해 내가 공평하지 않은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공평성의 원칙'은 감성에서 중요하다. 친구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10만원을 주웠다고 하자. 한 친구가 9만원을 갖겠다고 하면서 다른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1만원만 준다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없던 돈 1만원이 생겼는데도 화가 나는 것은 공평성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공평성에 대한 잣대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공평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할 때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협상은 심리전이기 때문에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서로 수긍할 수 있어야 받아들인다. 윈-윈의 패러다임은 그래서 중요하다.


심리전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필요하다. 내 분에 못 이겨, 내 욕심이 눈을 가려 상대방과 판세를 못 읽어서는 곤란하다. 외교 협상에서도 명분과 실리는 분명히 따져야 한다. 명분도 얻고 실리도 취하면 가장 좋지만, 사안에 따라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것인지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협상에서 자신에 대한 과신은 위험하다. 내 입장만 보느라 큰 그림을 못 보게 되면 심리전에서 진다.

                                 강미은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 .     2005.04.2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