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년 4월호 심상 발표 시

청송 대추 2019. 7. 7. 19:04

거머리   -   김태춘

 

 

종아리가 새까맣다

배가 통통해질 때까지 최대한 은밀하게

그러다 익은 열매처럼 툭 떨어지는 것이

애인의 바람난 애인 같다

 

은근슬쩍 내빼던 놈이 미안했던지

옆걸음 치며 실실 웃는다

나도 허허 웃을 밖에는

 

논둑에 퍼질러 막걸리를 마시면

치솟는 비료 값에 핏대가 오르고

거머리 빨던 자리 빨갛게 부어 오른다

 

저도 살아야겠지

거머리 같은 놈

내 피 아니면 무엇으로 살꺼냐

 

남의 피를 훔치는 일이 보통 일인가

그게 도리 없는 천직이라 해도

머리 내어놓고 대들어야 하는 일

 

그래도 하늘은 청청하지 않느냐

너는 네 방식대로 노려라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나갈 것이다

 

 

 

 

개화(開花)  - 김태춘

 

생살 찢어야 열리는 길을

말 한마디 없이 내어 주었습니다

 

세상보다 무겁다는 문을

실바람 한 번에 열었습니다.

 

동해보다 넓고

서해보다 깊다는 그 큰 의미를

닭 모이 뿌리듯 흩어 버렸습니다

 

백일기도 삼천 배

밤새워 풀어야 할 화두

일생을 걸어 망설여야 할 기약을

봄바람 한 번에 던지고 말았습니다

 

내일 또 어떤 바람 불지

티끌만한 염려도 없이

단번에 문고리 풀어 내렸습니다.

 

 

 

 

 

 

 

   

   

 

 

사슬 - 김태춘

 

 

스파르타쿠스여

고리의 실체를 알았다 해도

행복한 노예에게 자유를 말하지 말게

부끄러움 모르는 노예에게

혁명을 말하지 말게

 

손가락 하나로도 끊어지는 사슬이

누구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자유는 백성을 불안하게 하지

민주의 이름으로 교수대에 올리지

 

손때 묻은 것 쉬 버려지겠는가

습관은 사슬보다 강하여

차라리 무덤에 함께 묻어주게

 

자유를 싼값에 팔지 말게

민주와 혁명의 사슬 채우지 말게